80년대 감초 배우 남포동, 그가 겪은 5가지 인생 고난과 극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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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아닌 시작, 영화사 직원에서 배우로

남포동 배우는 원래 배우가 아닌 영화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영화사에서 제작부장까지 오른 그는, 당시 인력난으로 인해 단역으로 몇 번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어느새 연기 경험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중년이 되어서야 전문 조연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죠. 특유의 사투리와 익살스러운 연기는 그만의 독보적인 매력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역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배우가 되어 있더라고요.”


황금기, 스크린과 방송의 감초 배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남포동 배우는 영화와 드라마, CF까지 섭렵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초 배우로 활약했습니다. 나도 연애할 수 있다, 불타는 소림사, 여명의 눈동자, 겨울의 향기 등 수많은 작품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코믹 연기와 익살스러운 표정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그는 ‘원조 신 스틸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가정과 재산, 두 번의 이혼과 사기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 부인이 주식 투자 사기를 당해 수십억 원의 재산을 모두 잃게 됩니다. 이후 본인의 사업도 실패하고,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가정이 파탄났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남포동 배우는 모텔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과는 연락이 끊기기도 했고, 생전에 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재산도, 가족도, 모두 잃고 모텔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어요.”


건강 악화, 간암 투병과 이식 수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포동 배우는 간암에 걸렸습니다. 11년간 간암과 투병하며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과 동생의 간 기증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하루 세 번, 네 번 약을 먹으며 건강을 챙기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삶의 극복, 모텔방에서 다시 일어선 이야기

남포동 배우는 모텔방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치아 치료를 받고, 딸의 도움을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하루 세 시간씩 요양보호사와 대화를 나누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숫자 맞추기 같은 간단한 놀이로 뇌를 자극했습니다. 그의 고향 친구는 언제든 부산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방을 준비해두고 있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도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남포동 배우의 인생은 고난과 극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배우의 근황을 넘어, 인생의 시련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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