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봉건사회와 현재의 기업사회
과거 봉건시대에는 각 지방에 영주가 있었고, 그 밑의 농노들은 영주의 토지를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작황과는 관계없이 정해진 몫의 곡식을 받아 생활했죠.
오늘날 우리는 기업에 취직해 기업을 위해 일하고, 회사의 실적과 상관없이 고정된 급여를 받습니다. 영주의 땅이 기업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 자체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노력은 했지만 열매는 없다
열심히 일해 회사가 성장했지만, 그 결실은 대부분 회사의 몫입니다.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일부를 나누어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회사가 얻은 막대한 수익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성과급이 없는 회사가 훨씬 더 많기에, 일부 사람들은 보너스를 받은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하이닉스 직원들이 받았다는 1억 원의 인센티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적정 임금’이라는 이름의 함정
정부는 부당한 임금 지급을 막기 위해 최저시급이라는 제도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이 ‘최저선’에 맞춰 임금을 지급합니다. 대기업은 다소 높은 급여를 주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차별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대부분의 임금은 일정한 범위 내에 갇혀 있습니다.
사람들의 연봉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많이 받는 사람은 약 1억 원, 적게 받는 사람은 5천만 원 이하. ‘적정 수준의 임금’이라는 표현은 과연 누가 정한 것일까요? 이 말은 어쩌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적당히 만족하며, 지속적으로 회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
즉,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금액이 아닌,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한 ‘순응 가능한 보상’일지도 모릅니다.
“1년간 벌어들인 순이익의 30%를 직원들에게 기여도에 따라 나눠 임금으로 지급한다.”
이런 임금책정 방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단지 ‘1년간의 급여 총액’을 정해놓고 고정적으로 지급합니다. 회사가 호황일 때 직원은 조금 더 받고, 불황일 때는 해고당하는, 을중의 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제도
이 시스템은 ‘현대판 노예제’라고 할 만합니다. 이 거대한 구조에서 벗어나 ‘빨간 약’을 삼키고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 일부는 다시 이 먹이사슬 위에서 또 다른 노예를 고용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하방이 닫힌 임금체계
우리 임금 시스템이 회사 이익과 연동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상승 기회’는 포기하더라도 ‘하락 위험’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세, 생활비, 대출금 등을 내야 하는 현실에서 월급이 줄어드는 변동성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업사이드를 포기하고, 하방을 막는 고정 임금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벗어나기 위한 길
이 부당한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불로소득’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파이프라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송유관처럼 돈이 지속적으로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추가 수입원이 있어야 현재의 임금체계에 저항하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톱니바퀴처럼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당연히 여긴 채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제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때이며, 그 시작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