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파일 전달을 누락하는 바람에 제품이 잘못 제작되었고 결국에는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이르게 된것이죠. 회사에 끼친 피해는 약 3천만원정도 될거 같습니다.
물론, 아직 확정된 피해는 아니고 수정을 최소화하여 기존의 제품을 살리는 방법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 방법을 업체를 통해서 찾아보고 있는 중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죠. 이 피해를 회사에서 개인에게 직접 부담을 지우지는 않겠지만(그렇지 않을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내 실수로 인해서 일정도 늦어지고 금전적인 피해도 발생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러한 마음이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참으로 속상한 상황중에 하나입니다. 어디에 풀 수도 없다보니 가장 만만한 자식들에게 그 피해가 가는것만 같아서 너무나 마음이 무겁고 죄스럽습니다.
회사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내가 내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은 맡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내 책임을 다 하고 있지 못해서 그런건 아닌지 하고 계속 반문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보상은 적고 책임만 많은 지금의 직장이 너무나 싫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직장을 때려친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직장에서는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긴 합니다.
이전 직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농업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제 맡은 역할은 농장을 관리하는 위치였죠. 스타트업이었지만 규모가 점점 커져 외부 위탁에 의해서 농장을 운영해주는 업무도 시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농장을 지어주고 농장의 운영까지 위탁한 상황이었죠. 우리가 우리의 기술로 지어준 농장이니 농장에서 예상했던 수익이 난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농장주도 그것을 바라고 기꺼이 몇십억의 투자를 해 준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농장이 막 운영을 시작하던 차였고 시기상으로 여름이었기 때문에 작물이 웃자라거나 너무 더워서 잘 자라지 않았죠. 해충 피해로 인해서 버리는 작물들도 많았습니다.
매달 보고하는 리포트에는 기대 이하의 숫자가 찍혔습니다. 농장주는 도대체 언제쯤 정상궤도에 오르는지 끝없이 저를 압박해왔습니다. 제 대답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변변찮은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크지 않은 수확량이다보니 전량을 저희 본사에서 구매를 했고 그렇게 한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름동안에 사장이 저에게 주문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수요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을이 되면 작물 재배량이 많아질텐데 그걸 다 소화할 수 없으니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당시에는 본사에 마케팅팀도 함께 있었으니 만약 투자처를 찾는 것이었다면 그 마케팅팀이 역할을 했어야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저에게 전해졌고 당연히 저는 업무를 잘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이 오니 예상했던대로 작물이 잘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희 회사에서는 엑셀 기반으로 작물량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활용중이었습니다(제가 만들었습니다) 그 시스템으로 계산해보니 앞으로 한달정도 뒤에 10월쯤이 되면 작물 수량도 많아지고 작물 당 무게도 증가해서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작물의 총 가격이 1억원 이상이 될 거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 계산을 당시 사장(친구였음)에게 전하자 화를 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당시 표현으로 이건 횡령(?)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했었죠. 회사돈을 막 쓴다라는 의미로 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실제할 수 없는 수치로 농장을 팔아먹고 그 농장을 운영하면서 제대로된 수익을 보여주지도 못하다가 이제 반짝 농장의 케파에 맞는 수익이 나오자 그걸 왜 다 구매하냐는 이야기로 몰아세우는 상황을 지금도 사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시 저에게는 제 능력보다 많은 책임이 있었고 저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죠.
그 일이 있고난 뒤 저는 사장에게 퇴사를 권유받고 퇴사를 하게 됩니다. 그 뒤 약 일년동안 제 커리어에서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지금은 회복하여 지금의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큰 도전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생활이 이렇게 끝이나고 말았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이 그 때와 오버랩되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정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서 생긴 문제인가요? 제가 업무에 철저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생긴 문제인걸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끝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최악의 경우(그러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저는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희 회사는 통합임금제라서 야근을 많이 하든 일이 적게하든 상관없이 일정한 금액의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공공기관이다보니 호봉에 따라서 연봉이 결정됩니다. 쉽게말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는 회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정말 바보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한테서 사고가 발생하고 피해가 생깁니다.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렇게 한번씩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마음이 많이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담배도 그렇다고 술도 하지 않는데 참으로 적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좀 풀어보려 밖에 산책을 나갔다가 가을 모기에 엄청 뜯기고 들어왔습니다. 지금도 가려운 발을 비벼가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회사로 가면 또 다시 막막한 상황을 마주해야 할텐데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야 나중이 되면 그냥 에피소드가 되고 한낱 추억거리가 되겠지요.
바라는 것은 저의 이 감정이 가족들에게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음밭이 많이 황폐해져서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무쪼록 지금의 상황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